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명랑’은 ‘긍정’과 통하고, ‘발랄’은 ‘도전’과 통하고 ‘소녀’는 ‘꿈꾸는 인간’과 통하니까요. 책읽기.

- ‘명랑 발랄한 소녀’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좋지요. ‘명랑’은 ‘긍정’과 통하고, ‘발랄’은 ‘도전’과 통하고 ‘소녀’는 ‘꿈꾸는 인간’과 통하니까요. 그렇게 살렵니다. 동료가 붙여준 ‘김진애너지’라는 별명도 좋아합니다. 관심사 많고 하는 일 많다고 붙여준, ‘멀티 인간, 르네상스 인간’이라는 말도 좋고요." 



많이 알고자 하지 말고 틀을 세우고자 하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안다? 이는 뼈대가 튼튼해서 판단력과 분별력이 생기고 새로운 지식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비판 기능이 작용함을 뜻한다. 바로 '틀'이다. 지식의 틀, 판단력의 틀이다.
특히 초보자의 책읽기는 틀 세우기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틀 세우기'를 위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적어도 세 권의 책을 읽을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라!"
그때까지 그 주제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권은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두 권은 지나치게 대립적이고, 세 권은 되어야 역동적이면서도 균형적이다.
마치 세울 '鼎(정)' 자처럼."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이 ‘지식’이라는 나무를 형성하는지, 위로 아래로 자라면서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이파리, 열매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맥을 알고 나니 그제야 맘 편해졌다.역시 큰 맥을 짚을 수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러나 맥을 짚는 것과 내용을 짚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책은 봐야한다. 그리고 되도록 자유롭게 보는 것이 좋다. 내가 로치 라이브러리에서 특히 행복했던 시간은 매학기 끝난 직후 십여 일간이다. 학기 중에는 수강 필수 독서량이 적지 않고 또 숙제하기 위한 ‘목적성’ 독서가 만만치 않아서 자유 독서를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런데 마지막 시험 또는 리포트를 낸 직후부터 방학 중 일이 시작되기 전 십여 일 사이의 시간은 완전히 자유 독서가 가능한 시간이다. 어떤 책도 내 맘대로 볼 수 있다. 
나는 이 시간의 많은 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개가식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분류시스템이란 참 좋은 것이어서 특정 주제에 대한 책들이 서가 한 부분에 몰려있으니 어떤 책도 꺼내볼 수 있다. 얼마 안 되어서 서가 어디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한 주제에 대해 어떤 연구들이 쌓여 있는지 아는 수준이 된다. 좋은 책, 그저 그런 책, 쓰레기 같은 책(미국만큼 수준 낮은 책들이 많은데도 또 없다. 독자층이 넓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만큼 엄청난 책이 쏟아져서일 것이다.), 또 기막힌 책을 파악하는 눈도 뜨인다. 
(위 사진은 MIT의 휴매니티 라이브러리. 공간은 별찮지만, 창 밖으로 코트와 찰스강이 보여서 인기 만점. 겨울 사진이 참 낭만적이고, 공부 하고 싶게 만들지 않는가. 아니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공부에 전념하게 만든다고 할까?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 교수가 있는 인문학부, MIT의 자존심을 지킨다.)  
가끔은 다른 전문도서관으로 원정을 갔다. 사회인문 도서관, 과학 도서관, 경영 도서관에 가면 또 다른 종류의 빙산들이 있다. 몇 개의 키워드로 도서카드를 찾고(지금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있어 책 찾는 낭만은 덜하다.) 흥미롭다 싶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이 꽂혀있는 서가 주변을 맴돌면서 이 책 저 책 열어보곤 했다. 참으로 끝없는 여행이었다. 

 (이 사진은 MIT의 바커 엔지니어링 라이브러리. 공학부가 가장 큰 만큼 도서관도 가장 크고, 무엇보다, MIT 중심 건물의 가장 큰 돔 바로 아래 있다. 원형 공간을 아주 재미있게 설계해서 독특한 분위기다. 전통 엔지니어링 학부 학생들은 주로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지, 이 도서관은 크기에 비해서 한적한 편의 도서관이어서 내가 즐겨 이용했었다. 사진에서 밝게 보이는 것은 서가이고 그 뒤편을 따라 작은 공간들이 있는데, 빠져들기에 그만인 공간이다. 자료 출처: MIT The Barker Engineering Library)  
 
도서관 수준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맛을 보기 어렵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우리의 경제 발전과 지적 수준의 발전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물론 요새는 대형서점들이 있어서 서점만 돌아봐도 세상에 어떤 지식들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인벤토리가 풍부해졌다. 그러나 서점은 주로 신간 위주이니 열매와 꽃만 잔뜩 열린 식이어서 뿌리와 줄기를 알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책이란 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체계를 잡는 것, 이것이 책을 읽는 나의 기본자세다.
  
책은 보고다. 영원한 보고다. 아무리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 부문이 발달되더라도 책은 ‘지적 리더십’의 역할을 잃지 않을 것이다. 지적 창조의 대상이자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비록 많은 자리를 다른 커뮤니케이션 매체들과 공유하겠지만 ‘지적 리더십’은 책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정보 제공’이라는 의미에서의 책의 기능은 줄어도 ‘지식 생산’ 또는 ‘지혜 생산’이라는 의미에서의 책의 기능은 오히려 커지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것은 책이라는 ‘종이’ 세계와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모니터’ 세계와의 본질적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글자로 이루어진 책과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모니터 세계와의 본질적 차이라면 총괄성과 단속성, 체계성과 즉시성, 추론적 사고와 단정적 사고, 능동성과 수동성 등의 대비적 성격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책이란 독자의 통합적, 체계적, 논리적, 능동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또한 키워준다.    

어떻게 책과 함께 자랄 것인가? 
책 읽기보다 더 쉽고 자극적인 유혹이 사방에 깔려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책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책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김진애 - 매일매일 자라기




돌아갈 때가 다가온다. 
지금의 삶이 분명히 미래의 나에게는 너무나 그리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지 늘 다짐하면서
자꾸 나의 시선으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단정짓는다.
이렇게 해서 독립할 수 있을까.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체크해 가며 준비해야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결국 2년전의 반복이다.
이번겨울. 마지막 Transition point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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