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Vs 김수현,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두 얼굴'
[분석] 한국 최고 드라마작가 김수현, 그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들
13.01.06 12:28l최종 업데이트 13.01.06 12:43l
JTBC <무자식 상팔자>가 종편의 역사를 매주 새로 쓰고 있다. 19회 시청률은 6.674%(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유료방송 가입가구 기준)를 기록했고, 분당 평균 시청률은 이미 10%대다. 종편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음은 물론이고, 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 도 노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돌풍의 중심에 김수현 작가가 자리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실패를 모른 '김수현 드라마'의 위력이 여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수현 드라마는 김수현의 드라마이기에 본질적인 한계를 갖고 있고, 김수현의 드라마이기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가'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살아있는 권력, 그러나 동시에 '일회용'이라고도 불리는 김수현의 드라마들. 작가 김수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김수현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
김수현은 장인인가, 상업작가인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 대본에, 45년 동안 진두지휘해 오고 있는 대본 연습, 대사의 토씨 하나 바꾸지 못하게 한다는 꼿꼿한 자존심과 방송국 사장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는 김수현의 존재감. 여기에 촌철살인의 대사와 마치 옆에 서 있는 듯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은 그대로 한국 드라마의 전형이 됐고, 한국 드라마의 상징이 됐다. 천재적인 필력과 재능은 김수현 드라마를 단지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장인' 김수현의 이면엔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업작가' 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김수현 스스로 "드라마작가의 좋은 점? 환금성이죠. 너무 속물적인가?" 라고 말할 정도로 김수현과 김수현 드라마는 무수한 '돈'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김수현이 누리고 있는 영광과 권력은 모두 돈에서 나왔고, 돈에서 시작했다.
최초의 억대 원고료 작가, 회당 원고료 1억원이라는 파격적 대우를 받는 작가는 국내 드라마 작가 중 김수현이 유일하다. 김수현이 걸어온 길에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는 찬사와 '드라마를 상품화하고 끝내 자신마저 상품화시켰다' 는 조롱이 함께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을 넘나들어온 김수현은 그 '높낮이'를 스스로, 동시에 방송 시스템 속에서 꾸준히 조절해왔다"던 경향신문 김주현 기자(2007. 5. 50 <'작둣날 타는 언어'작가 김수현>에서 발췌)의 평가는 상업작가 김수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김수현의 작품은 방송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상업 작품이며 그것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간에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로 직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수현 드라마를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김수현의 작품을 '고전'의 위치로 끌어올리기엔 너무 상업적이고, 오직 상업 작품으로만 평가하기엔 지난 시간 김수현 드라마가 남긴 족적들이 만만치 않다. 끝끝내 김수현이 장인의 위치에 올라서지 못하면서도 장인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딜레마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이 딜레마가 지속되는 한 김수현을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 격렬한 논쟁 속에서 김진애 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자신의 칼럼(2008. 11.22 <김수현은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에서 발췌)에서 나름 재미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김수현에 대한 논쟁은 사회체제의 '속물적 엄숙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상업 희곡작가였던 셰익스피어가 대가의 반열에 올랐듯이, 속물적 엄숙주의를 버리고 김수현을 평가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속과 고전의 이분법 공식으로는 김수현과 그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셈이다.
결국 김진애가 주장하는 '속물적 엄숙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드라마작가 김수현의 '본질'에 관한 논쟁은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다. "드라마작가의 가장 좋은 점은 환금성" 이라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절대 돈 때문에 작품을 쓰지는 마라"고 말했던 김수현의 양면성처럼.
'언어의 마술사'인가, '말장난의 천재'인가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대사가 맛깔스럽다고 평가한다. 김수현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대사가 시끄럽다고 평가한다.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도 대사고, 김수현 드라마를 싫어하는 이유도 대사다. 어찌되었든 김수현 드라마의 상징은 곧 언어이자 대사인 것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이 45년간 김수현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이유다.
김수현 드라마의 작법은 라디오 드라마에 가깝다. 굳이 영상을 보지 않아도 대사만으로 상황을 능히 파악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진애는 앞서 언급된 칼럼에서 "김수현의 감각적 대사 속에 숨어 있는 '뼈'는 '요주의 함의'를 담고 있다"며 "무슨 끈이 달려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층적이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태릉선수촌>과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한 이윤정 PD는 김수현의 언어가 남긴 기억 한 토막을 이렇게 펼쳐낸다.
"아마 <사랑과 진실> 이었을 거다. 한 겨울, 눈 오는 밤 세트로 지은 골목길에 임채무와 정애리가 눈을 맞고 있었다. 임채무가 말했다.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정애리는 예의 그 겨울바람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때 임채무의 한 마디 "그럼 하늘이 무너질 거야." 그리고 갑작스런 키스. 나는 그 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의 부딪힘을 보았다. 연애의 절정. 그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짜릿한 밀고 당김을 보았다. 김수현은 그렇게 나에게 사랑의 불꽃을 보여주었다." (2006. 9.28 매거진 T <내 인생의 김수현>에서 발췌)
이처럼 김수현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말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 숨쉰다. 요란스런 세트와 상황설정 없이도 앉은 자리에서 현란한 언어를 구사해 사람들을 잡아당긴다. 과거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토해버리며 부딪히는 사람들은 김수현 드라마의 인간들이 유일했다. 김수현 드라마가 사람과 시대를 함께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사람도 바뀌었다. 지금 이 시대는 말이 너무 많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여러 매체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사는 지금, 김수현 드라마 속 인간들의 말까지 받아내야 한다는 건 어떤 이에겐 고역이고 고통이다. "김수현 드라마에는 세 가지 압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대가족의 압박이고 두 번째는 '준비된 대사들의 압박' 마지막은 관계의 압박이다"라던 <무비위크> 홍수경 기자(2006. 9.28 매거진 T <내 인생의 김수현>에서 발췌)처럼 말이다.
이처럼 "독 안에 들었어도 팔자 도망 못 간대" 같은 김수현식 대사를 반짝거리는 대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김수현이 '언어의 마술사'라 추앙 받으면서도 '말장난의 천재'로 조롱 받는 현실은 그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강점과 결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논란에 정답은 없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찬사와 폄하의 극단 속에서 김수현의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묵묵히 TV 드라마를 관통하는 일 뿐이다.
아무도 못 말리는 김수현의 '자존심'
김수현은 기본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며, 기싸움을 즐겨하는 작가다. 앞으로 나가는 일은 있어도 물러서는 일은 거의 없고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대충 뭉개지 않고 끝장을 본다. 이건 작품, 투쟁, 배우관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는 김수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대본에 인쇄 된 글자는 '토씨' 하나 바뀌면 안 되고, 연기 지도와 상황 설정, 대사톤까지도 김수현의 영향력을 벗어나면 혼쭐이 난다. 김수현 드라마를 두고 '연출과 연기자는 없고 작가만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는 것이 연출, 작가, 배우가 삼위일체가 되어 만드는 공동 작업인데, 유독 김수현 드라마는 'Only 김수현'만 보인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은 김수현의 영혼과 김수현의 언어들 뿐이다.
이런 항간의 비판에 김수현은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다, 내가 쓴 대사를 고치기 시작하면 모든 틀이 무너져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1994년 드라마 <작별> 촬영 당시 연출자가 자신의 뜻대로 연출을 하지 않자 1주 만에 연출자를 갈아 치워버리는 강단도 바로 이런 자존심 혹은 오만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수현의 이런 자존심은 비단 작품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종 그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에서도 잦은 마찰을 빚었다. 각종 평론가, 기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 멋대로들이니까'라고 평가한다든지, "다시는 이 쪽 보고 침도 안 뱉는다"며 방송사를 팽해 버리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오만과 독선'이 역설적이게 드라마 작가의 위치를 재정립하는데 일조했다는 건 상당히 재밌는 사실이다. 김수현이 오랜 시간 방송작가협회 쪽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작가의 지위 상승과 이권 확립에 기여한 공은 그 크기를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 정도로 그의 자존심은 때론 오만과 독선의 칼날로, 때로는 투쟁과 진보의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어쩌면 혹자들이 김수현 드라마에서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것도 작가 김수현의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장르를 넘나드는 김수현 드라마
모든 면에서 극단의 평가를 받는 김수현의 특성상 김수현이 추구하는 장르적 특성도 극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를 쓴 김수현이 <부모님 전상서>를 썼다는 것도 이상하고, <청춘의 덫>을 쓴 김수현이 <사랑이 뭐길래>를 썼다는 것도 이상하다. <목욕탕집 남자들>의 그 터질 듯한 희극적 요소들은 <천일의 약속>에 이르러선 완전히 거세됐다.
일단 김수현은 대표적인 '치정작가'로 알려져 있다. <청춘의 덫>부터 <내 남자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미혼모·불륜·파격적 사랑·복수·치정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런 파격적 요소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또한 김수현은 '가부장 옹호 작가'다. '가족 따윈 필요 없고 사랑 따윈 허무하다'는 냉소적 시선이 '대가족 드라마' 로 들어오면 눈 녹듯 사라진다. 김수현식 홈드라마는 존경받는 어른과 그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김수현은 '코미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남자들>, 그리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무자식 상팔자>까지 이 드라마들은 모두 김수현의 코미디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웃음은 만세에 걸쳐서 유효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남자들>은 케이블 TV 재방송을 삼방에, 사방까지 걸쳐하고 있고 <무자식 상팔자>는 종편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동시에 김수현은 '비극작가'다. <완전한 사랑><천일의 약속>에서 보이는 김수현의 비극적 설정은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에 대해 김수현은 그 누구보다 처절하고도 냉담하게 바라본다. 그의 비극에는 현실적 타협이나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극 그 자체에 천착하는 것이 김수현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김수현은 '명품작가'다. 김수현의 단막극은 높은 시청률 뿐 아니라 작품성면에서도 이례적인 찬사를 받았다. 김수현의 장편들이 호불호의 극단 속에서 양면의 평가를 받았다면 단막극들은 언론, 시청자, 평단할 것 없이 모두 호의적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김수현의 단막극이 끝나면 언제나 그의 위치는 재정립된다. 상업작가에서 명품작가로 말이다.
김수현과 그의 드라마, 어디로 가고 있나
치정극과 홈드라마, 비극과 희극, 상업작가와 명품작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수현 중 어떤 것이 진짜 김수현일까. 궁금해진다. 김수현은, 그리고 김수현 드라마는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과연 그는 끝까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놓지 않은 채 40년 켭켭이 쌓아올린 훈명을 고이 보전할 수 있을까. 김수현의 드라마는 지금 시대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가. 그의 드라마는 고전인가, 아니면 낡아빠진 구시대의 유물인가. 김수현 드라마의 유통기한은 어디까지인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오직 필력 하나만으로 정상의 자리를 밟은 김수현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 작가이자 당대의 문화권력이다. 수많은 논쟁과 비판들 속에서 김수현이 여봐란 듯이 '김수현'인 채로 남아있는 이유다. 45년이 넘는 시간동안 뒤쳐지지 않고 현역에 남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충분한 연구대상이다. <무자식 상팔자>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지금, 김수현의 만들어 나갈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훗날 그가 어떤 평가를 받는 작가로 역사에 기록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수현 드라마는 김수현의 드라마이기에 본질적인 한계를 갖고 있고, 김수현의 드라마이기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가'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살아있는 권력, 그러나 동시에 '일회용'이라고도 불리는 김수현의 드라마들. 작가 김수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김수현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
김수현은 장인인가, 상업작가인가
▲ 김수현 작가 | |
ⓒ SBS |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 대본에, 45년 동안 진두지휘해 오고 있는 대본 연습, 대사의 토씨 하나 바꾸지 못하게 한다는 꼿꼿한 자존심과 방송국 사장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는 김수현의 존재감. 여기에 촌철살인의 대사와 마치 옆에 서 있는 듯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은 그대로 한국 드라마의 전형이 됐고, 한국 드라마의 상징이 됐다. 천재적인 필력과 재능은 김수현 드라마를 단지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장인' 김수현의 이면엔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업작가' 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김수현 스스로 "드라마작가의 좋은 점? 환금성이죠. 너무 속물적인가?" 라고 말할 정도로 김수현과 김수현 드라마는 무수한 '돈'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김수현이 누리고 있는 영광과 권력은 모두 돈에서 나왔고, 돈에서 시작했다.
최초의 억대 원고료 작가, 회당 원고료 1억원이라는 파격적 대우를 받는 작가는 국내 드라마 작가 중 김수현이 유일하다. 김수현이 걸어온 길에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는 찬사와 '드라마를 상품화하고 끝내 자신마저 상품화시켰다' 는 조롱이 함께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을 넘나들어온 김수현은 그 '높낮이'를 스스로, 동시에 방송 시스템 속에서 꾸준히 조절해왔다"던 경향신문 김주현 기자(2007. 5. 50 <'작둣날 타는 언어'작가 김수현>에서 발췌)의 평가는 상업작가 김수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김수현의 작품은 방송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상업 작품이며 그것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간에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로 직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수현 드라마를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김수현의 작품을 '고전'의 위치로 끌어올리기엔 너무 상업적이고, 오직 상업 작품으로만 평가하기엔 지난 시간 김수현 드라마가 남긴 족적들이 만만치 않다. 끝끝내 김수현이 장인의 위치에 올라서지 못하면서도 장인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딜레마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이 딜레마가 지속되는 한 김수현을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 격렬한 논쟁 속에서 김진애 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자신의 칼럼(2008. 11.22 <김수현은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에서 발췌)에서 나름 재미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김수현에 대한 논쟁은 사회체제의 '속물적 엄숙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상업 희곡작가였던 셰익스피어가 대가의 반열에 올랐듯이, 속물적 엄숙주의를 버리고 김수현을 평가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속과 고전의 이분법 공식으로는 김수현과 그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셈이다.
결국 김진애가 주장하는 '속물적 엄숙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드라마작가 김수현의 '본질'에 관한 논쟁은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다. "드라마작가의 가장 좋은 점은 환금성" 이라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절대 돈 때문에 작품을 쓰지는 마라"고 말했던 김수현의 양면성처럼.
'언어의 마술사'인가, '말장난의 천재'인가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대사가 맛깔스럽다고 평가한다. 김수현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대사가 시끄럽다고 평가한다.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도 대사고, 김수현 드라마를 싫어하는 이유도 대사다. 어찌되었든 김수현 드라마의 상징은 곧 언어이자 대사인 것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이 45년간 김수현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이유다.
김수현 드라마의 작법은 라디오 드라마에 가깝다. 굳이 영상을 보지 않아도 대사만으로 상황을 능히 파악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진애는 앞서 언급된 칼럼에서 "김수현의 감각적 대사 속에 숨어 있는 '뼈'는 '요주의 함의'를 담고 있다"며 "무슨 끈이 달려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층적이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태릉선수촌>과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한 이윤정 PD는 김수현의 언어가 남긴 기억 한 토막을 이렇게 펼쳐낸다.
"아마 <사랑과 진실> 이었을 거다. 한 겨울, 눈 오는 밤 세트로 지은 골목길에 임채무와 정애리가 눈을 맞고 있었다. 임채무가 말했다.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정애리는 예의 그 겨울바람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때 임채무의 한 마디 "그럼 하늘이 무너질 거야." 그리고 갑작스런 키스. 나는 그 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의 부딪힘을 보았다. 연애의 절정. 그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짜릿한 밀고 당김을 보았다. 김수현은 그렇게 나에게 사랑의 불꽃을 보여주었다." (2006. 9.28 매거진 T <내 인생의 김수현>에서 발췌)
이처럼 김수현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말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 숨쉰다. 요란스런 세트와 상황설정 없이도 앉은 자리에서 현란한 언어를 구사해 사람들을 잡아당긴다. 과거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토해버리며 부딪히는 사람들은 김수현 드라마의 인간들이 유일했다. 김수현 드라마가 사람과 시대를 함께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사람도 바뀌었다. 지금 이 시대는 말이 너무 많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여러 매체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사는 지금, 김수현 드라마 속 인간들의 말까지 받아내야 한다는 건 어떤 이에겐 고역이고 고통이다. "김수현 드라마에는 세 가지 압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대가족의 압박이고 두 번째는 '준비된 대사들의 압박' 마지막은 관계의 압박이다"라던 <무비위크> 홍수경 기자(2006. 9.28 매거진 T <내 인생의 김수현>에서 발췌)처럼 말이다.
이처럼 "독 안에 들었어도 팔자 도망 못 간대" 같은 김수현식 대사를 반짝거리는 대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김수현이 '언어의 마술사'라 추앙 받으면서도 '말장난의 천재'로 조롱 받는 현실은 그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강점과 결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논란에 정답은 없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찬사와 폄하의 극단 속에서 김수현의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묵묵히 TV 드라마를 관통하는 일 뿐이다.
아무도 못 말리는 김수현의 '자존심'
▲ JTBC <무자식 상팔자> 포스터 | |
ⓒ JTBC |
김수현은 기본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며, 기싸움을 즐겨하는 작가다. 앞으로 나가는 일은 있어도 물러서는 일은 거의 없고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대충 뭉개지 않고 끝장을 본다. 이건 작품, 투쟁, 배우관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는 김수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대본에 인쇄 된 글자는 '토씨' 하나 바뀌면 안 되고, 연기 지도와 상황 설정, 대사톤까지도 김수현의 영향력을 벗어나면 혼쭐이 난다. 김수현 드라마를 두고 '연출과 연기자는 없고 작가만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는 것이 연출, 작가, 배우가 삼위일체가 되어 만드는 공동 작업인데, 유독 김수현 드라마는 'Only 김수현'만 보인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은 김수현의 영혼과 김수현의 언어들 뿐이다.
이런 항간의 비판에 김수현은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다, 내가 쓴 대사를 고치기 시작하면 모든 틀이 무너져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1994년 드라마 <작별> 촬영 당시 연출자가 자신의 뜻대로 연출을 하지 않자 1주 만에 연출자를 갈아 치워버리는 강단도 바로 이런 자존심 혹은 오만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수현의 이런 자존심은 비단 작품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종 그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에서도 잦은 마찰을 빚었다. 각종 평론가, 기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 멋대로들이니까'라고 평가한다든지, "다시는 이 쪽 보고 침도 안 뱉는다"며 방송사를 팽해 버리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오만과 독선'이 역설적이게 드라마 작가의 위치를 재정립하는데 일조했다는 건 상당히 재밌는 사실이다. 김수현이 오랜 시간 방송작가협회 쪽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작가의 지위 상승과 이권 확립에 기여한 공은 그 크기를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 정도로 그의 자존심은 때론 오만과 독선의 칼날로, 때로는 투쟁과 진보의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어쩌면 혹자들이 김수현 드라마에서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것도 작가 김수현의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장르를 넘나드는 김수현 드라마
모든 면에서 극단의 평가를 받는 김수현의 특성상 김수현이 추구하는 장르적 특성도 극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를 쓴 김수현이 <부모님 전상서>를 썼다는 것도 이상하고, <청춘의 덫>을 쓴 김수현이 <사랑이 뭐길래>를 썼다는 것도 이상하다. <목욕탕집 남자들>의 그 터질 듯한 희극적 요소들은 <천일의 약속>에 이르러선 완전히 거세됐다.
일단 김수현은 대표적인 '치정작가'로 알려져 있다. <청춘의 덫>부터 <내 남자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미혼모·불륜·파격적 사랑·복수·치정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런 파격적 요소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또한 김수현은 '가부장 옹호 작가'다. '가족 따윈 필요 없고 사랑 따윈 허무하다'는 냉소적 시선이 '대가족 드라마' 로 들어오면 눈 녹듯 사라진다. 김수현식 홈드라마는 존경받는 어른과 그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김수현은 '코미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남자들>, 그리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무자식 상팔자>까지 이 드라마들은 모두 김수현의 코미디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웃음은 만세에 걸쳐서 유효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랑이 뭐길래>와 <목욕탕집 남자들>은 케이블 TV 재방송을 삼방에, 사방까지 걸쳐하고 있고 <무자식 상팔자>는 종편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동시에 김수현은 '비극작가'다. <완전한 사랑><천일의 약속>에서 보이는 김수현의 비극적 설정은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에 대해 김수현은 그 누구보다 처절하고도 냉담하게 바라본다. 그의 비극에는 현실적 타협이나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극 그 자체에 천착하는 것이 김수현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김수현은 '명품작가'다. 김수현의 단막극은 높은 시청률 뿐 아니라 작품성면에서도 이례적인 찬사를 받았다. 김수현의 장편들이 호불호의 극단 속에서 양면의 평가를 받았다면 단막극들은 언론, 시청자, 평단할 것 없이 모두 호의적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김수현의 단막극이 끝나면 언제나 그의 위치는 재정립된다. 상업작가에서 명품작가로 말이다.
▲ JTBC <무자식 상팔자> 출연진들 | |
ⓒ 이정민 |
김수현과 그의 드라마, 어디로 가고 있나
치정극과 홈드라마, 비극과 희극, 상업작가와 명품작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수현 중 어떤 것이 진짜 김수현일까. 궁금해진다. 김수현은, 그리고 김수현 드라마는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과연 그는 끝까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놓지 않은 채 40년 켭켭이 쌓아올린 훈명을 고이 보전할 수 있을까. 김수현의 드라마는 지금 시대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가. 그의 드라마는 고전인가, 아니면 낡아빠진 구시대의 유물인가. 김수현 드라마의 유통기한은 어디까지인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오직 필력 하나만으로 정상의 자리를 밟은 김수현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 작가이자 당대의 문화권력이다. 수많은 논쟁과 비판들 속에서 김수현이 여봐란 듯이 '김수현'인 채로 남아있는 이유다. 45년이 넘는 시간동안 뒤쳐지지 않고 현역에 남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충분한 연구대상이다. <무자식 상팔자>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지금, 김수현의 만들어 나갈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훗날 그가 어떤 평가를 받는 작가로 역사에 기록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
내가 지금 있는곳,
내가 지금 만나는 친구들,
내가 지금 같이 작업하는 사람,
나에게 지금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것들이라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지.
어제 렉쳐에서도 느낀거지만, 무엇을 하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걸 가지고 어떤 스토리로 어떻게 풀어나갈것인지 그게 중요한거지.
이번주말부터 김수현 작가 드라마가 다시 시작한다.
신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