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1일 수요일

자크 데리다 해체주의

현대사상의 뿌리들 : 자크 데리다
_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가장 유명한 현대 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저작이 꽤 난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나 <기록과 차이>(국내에는 <글쓰기와 차이>로 번역돼 있다) 같은 그의 저작들은 상당히 난해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저작들이 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혀왔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과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음을 입증해준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처럼 매혹시켰을까?
로고스 중심주의의 해체
이는 무엇보다 그의 철학의 전복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데리다에게 서양의 철학사는 현존(presence)의 형이상학의 역사였다. 이 점에서 데리다는 하이데거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들이 남긴 단편들에서는 존재가 ‘현존’으로, 곧 현존하는 것을 현존하게 해주는 운동 내지 사건으로서 이해되었으나, 플라톤 이후에는 존재가 실체로 이해되어 존재가 지닌 사건의 성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형이상학은 그리스 초기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났던 증여의 사건으로서 존재 의미가 점차로 망각되어온 역사이며, 이는 니체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데리다는 현존의 형이상학에 관한 하이데거의 관점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수정한다. 첫째, 하이데거와 달리 데리다는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의 단편에서 존재가 원초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다고 보지 않으며, 철학자들의 저작 속에서만 서양 형이상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문학과 예술 및 인문과학에서도 나타난다. 둘째, 더 나아가 데리다는 하이데거도 역시 현존의 형이상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하이데거가 여전히 로고스 중심주의적 편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로고스 중심주의 또는 음성 중심주의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의미나 진리의 생생한 현존으로서 로고스를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로고스는 음성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현존하는 그대로 드러난다고 간주해왔다. 이는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오래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루소나 후설, 하이데거 같은 근대 철학자, 그리고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같은 20세기 인문과학자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데 불과한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현존의 형이상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에게 현존의 형이상학은 ‘로고스 중심주의’이자 ‘음성 중심주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체 작업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의 부름’이나 ‘존재의 목소리’ 같이 음성 중심주의가 깃들인 은유들을 자주 사용하고, 또 진정한 존재의 의미는 기호들의 연관망에서 벗어나 있다고 간주하는 한에서 그는 여전히 서양 형이상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존의 형이상학을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반박하는 대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타자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타자는 바로 에크리튀르(ecriture), 곧 기록이다. 서양 형이상학은 주체들끼리 주고받는 음성적 대화를 특권화하면서 기록을 하찮은 것으로 매도해왔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기록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적 토대다.
왜 기록이 그처럼 중요할까? 왜 이 주장이 그처럼 전복적이고 혁신적이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원이나 로고스가 기원이나 로고스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원이나 로고스가 일회적인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기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보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원도 로고스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록에 의해 비로소 기원이나 로고스가 가능하다면, 현존의 형이상학의 주장과는 달리 기원보다 앞서는 것, 로고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이 된다. 기원, 로고스의 이면에는 카오스의 검은 구멍만이 존재하며, 이 카오스와 로고스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기록인 셈이다.
유령의 정치학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원과 로고스가 현존의 형이상학 내에서, 서양의 문명 내에서 그것들이 지니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데리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해체 작업에 의해 현존의 형이상학, 더 나아가 기존 서양 문명의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삶의 질서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현존의 형이상학처럼 기원과 로고스를 근원적인 진리로 가정하게 되면, 더 이상 역사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기원과 로고스에 담겨 있는 이상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며, 서양 문명의 원리인 로고스의 명령에 충실한 것을 정의로 간주하는 이상, 서양의 문명과 다른 타자들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들> 같은 저작에서 유령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윤리·정치사상을 전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닌 유령들이라는 형상은 기원의 부재라는 해체론의 원리에 충실하다. 더 나아가 유령은, 살아 있으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곧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약소자들을 나타나기에 적합한 명칭이다.
데리다는 이주노동자들, 인종차별과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사형수들 및 그 외 많은 약소자들에서 유령의 구체적인 현실태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들의 부름, 정의에 대한 호소에 응답하고 환대하는 일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정치적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199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한 것은 그의 철학사상의 전개과정과 매우 합치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원리가 해체된 이후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른 타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떻게 타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리다 사상의 영향과 현재성
데리다가 현대 인문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는 현대 문학이론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 중 하나로, 해체, 텍스트, 산종(散種), 은유, 장르, 수행성에 관한 그의 이론은 문학연구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또한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 같은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의 작업에서도 해체론은 핵심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데리다의 사상은 법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정전(正典)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데리다 사상을 원용한 바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전개된 비판법학운동은 해체론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나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 같은 정치철학자들의 작업에 미친 데리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발리바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고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재구성하는 데 데리다의 작업에서 여러 가지 이론적 자원을 빌려오고 있으며, 랑시에르와 아감벤은 데리다의 해체론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고 있다. 데모스에 대한 랑시에르의 재해석이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 등에서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데리다를 더 알고 싶다면
국내에는 데리다에 관한 여러 개론서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될 만하다. 데리다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페넬로페 도이처의 <HOW TO READ 데리다>(변성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를 읽는 게 좋다. 도이처는 쉬운 어법으로 데리다의 핵심 사상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고등학생 정도의 독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제이슨 포웰의 <데리다 평전>(박현정 옮김, 인간사랑)은 데리다에 관한 지적 평전이다. 학부 상급 학년 정도의 독자들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다.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는 데리다 사상의 원천 중 하나인 니체와 데리다의 관계를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두 사상가를 연결하고 있다. 학부 상급 학년 이상 수준의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국내 연구자의 저서로는 김상환 교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과 뉴턴 가버와 이승종 교수가 공동으로 저술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민음사)이 추천할 만하다. 김 교수의 책은 데리다 사상을 폭넓은 철학사적·문학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있고, 가버와 이 교수의 책은 현대 영미철학의 원천인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의 사상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유럽철학과 영미철학의 접근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두 책 모두 대학원생 수준의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http://blog.daum.net/altair01/15539187

자주 가서 읽어볼만한 블뢰그
2013년은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의 사후 100주년을 맞는 해다. 소쉬르는 당대 주류언어학을 비판하며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했다. 특히 그의 언어학에서 인식론적 전환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구조주의 사상으로 발전했다. 『대학신문』은 이번 기획을 통해 소쉬르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현재 그에 대해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탐구한다. 더불어 그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제공하는 메시지를 들어본다.

언어학을 독립 학문 반열에 올리다
“(언어학이란) 모든 언어에서 영원하고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힘을 찾아보며, 역사의 모든 독특한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법칙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는 당대 언어학계의 주류이던 ‘비교언어학’을 비판하며 언어의 일반적인 특성을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가 살던 19세기 말은 같은 계통의 두가지 이상 언어를 비교해 그 어원을 추적하는 ‘비교언어학’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다. 그 역시 비교언어학에 정통했으며 그의 몇 안 되는 저술 가운데 하나인 『인도유럽어 원시 모음 체계에 관한 논고』(1878)는 후대 인도유럽어족 연구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개별 언어 간의 비교 또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탐구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언어학인가

소쉬르는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기존과 전적으로 다르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소쉬르에게 언어는 다른 학문의 연구대상과 다르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며 관점에 의해서 창조되는 실체라고 생각했다. 비교언어학은 일차적으로 개별 언어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귀납적으로 분석한다. 소쉬르에 따르면 이는 허상을 탐구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소쉬르는 “언어학은 자명한 공리(公理)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한 후 그로부터 연역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소쉬르는 이런 공리의 성격을 갖춘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랑그(langue)’로 가정했다. ‘랑그’는 사회적 규범이 내재된 ‘언어체계’이자 ‘구조’로 정의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발화를 ‘파롤(parole)’이라 하며 이는 랑그라는 구조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어’, ‘영어’와 같은 사회적 규범이 존재해야 개별적인 파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소쉬르는 언어의 본질을 랑그로 보고 이를 언어학의 공리로 가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파롤은 언어구조인 랑그 속에서 ‘분절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영어라는 랑그에 속한 사람은 ‘sea’와 ‘ocean’을 구분해서 쓴다. 그런데 한국어라는 랑그에 속한 사람은 ‘작은 바다’와 ‘큰 바다’ 구분하지 않고 ‘바다’만 사용한다. ‘한국어’는 ‘바다’까지만 의미를 분절하지만 ‘영어’라는 랑그에서는 ‘sea’와 ‘ocean’까지 의미를 분절하는 것이다. 랑그 속에서 말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랑그로 가정하고 그것이 의미를 분절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을 함으로써 언어학의 연역적 방법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쉬르는 연역적 방법이 성립되기 위해 시간을 배제한 ‘공시태(synchronie)’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롤의 변화가 언어의 미묘한 변화를 야기해 랑그가 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를 랑그의 구조적 분석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생각했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간을 축으로 언어가 변화하는 양상을 ‘통시태(diachronie)’라고 정의했으며 비교언어학이 그 예가 된다. 이중 소쉬르는 공시태를 언어학의 연구대상으로 정의한 것이다.

전통과의 단절

이로부터 소쉬르는 랑그가 자의적 기호체계임을 이끌어 냈다. 그는 기호를 의미 전달의 단위라고 정의한 뒤 문자·음성과 같이 지각 가능한 부분을 ‘기표(記標)’, 내재된 의미를 ‘기의(記意)’로 구분했다. 그런데 소쉬르가 제시한 기호개념은 전통적인 서유럽의 기호개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유럽의 기호는 사물·낱말·관념 3가지로 구성된다. 하지만 소쉬르는 기호의 일부인 언어가 랑그에서 분절돼 의미가 결정되기 때문에 언어가 필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사물이란 없다고 봤다. 이를 ‘기호의 자의성’이라 했으며 전통적 서유럽의 기호에서 사물이 빠진 것이 소쉬르의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또 기표와 기의 역시 서로 자의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해석했다. 문자나 의미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언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의 결합에 있어 어떤 우선권이나 필연적인 선행관계는 있을 수 없고 자의적 원칙만이 있을 수 있다.

랑그의 자의성을 통해 소쉬르는 서유럽의 전통 언어관인 ‘사전목록식 정의’를 비판한다. 사전목록식 정의는 사물과 이름이 일대일 대응관계로 존재한다고 보는 언어관이다. 대상이 먼저 주어지고 언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예를 들었던 ‘바다’와 ‘sea’는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완벽히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랑그인 ‘한국어’와 ‘영어’로부터 분절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가 결합해야 할 대상이 미리 정해지지 않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전목록식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

이처럼 소쉬르는 랑그를 연구대상으로 정의하는 언어학을 ‘일반언어학’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사후 제자들이 일반언어학 이론을 정리한 『일반언어학 강의』(『강의』)를 통해 소쉬르의 사상이 후대에 전해지게 됐다. 일반언어학은 랑그를 언어학의 유일한 과학적 탐구영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사회학, 생리학, 심리학 등의 학문으로부터 랑그의 자율성을 확보를 했다. 따라서 언어학이 독립 학문의 위상을 차지하게 했다. 무엇보다 일반언어학은 전통 서유럽의 기호학관, 언어관을 전복시킴으로써 이후 언어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림 ① 소쉬르의 자필 원고
그림 ②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림 ③ 소쉬르가 교수로 재직했던 제네바대학
그림 ④ 『일반언어학 강의』의 원본

혁명으로 발전한 소쉬르의 사유소쉬르의 언어학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은 세계에 대해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구조주의’로 발전했다. 소쉬르는 구조적 관점에서 개별 언어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독립적이며 구체적인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기존 경험주의나 실증주의의 태도를 거부하며 관계의 망 속에서 분절된 대상의 의미를 찾는 구조주의로 발전하게 됐다. 이는 전통적인 사고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사상이다.

소쉬르의 사유가 처음부터 파급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우선 그의 사후 당시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이론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했다. 김현권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불문과)에 따르면 “일반언어학의 추상적이고 형식적 특성 때문에 당대의 학계에서 즉각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에 『강의』가 소쉬르의 사상을 잘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한몫 했다. 소쉬르의 제자인 언어학자 앙투안 메이예(A. Meillet)마저도 “소쉬르 선생이 살아있다면 이런 식으로 출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로 김 교수는 “1차 세계대전 후유증 때문에 유럽 전반적으로 학문 연구가 안정되지 못했다”며 “소쉬르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인식론적 혁명으로

그러다 1930년대 들어서 언어학계의 ‘프라그학파(prague school)’라는 집단에 의해 그의 사상이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로만 야콥슨(R. Jakobson)과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N. Trubetskoi)로 대표되는 이들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을 계승하며 구조언어학의 일종인 ‘음운론’으로 발전시켰다. 음운론은 언어의 소리 구조를 연구하는 언어학의 한 분야다. 음운론 언어학자들은 랑그와 파롤의 개념을 도입해 언어구조에서 말소리가 어떻게 변별적 의미를 갖는지 탐구했다. 그런데 야콥슨의 제자이자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가 음운론을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조주의의 역사는 시작됐다.

1950년대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음운론을 인류학에 적용시킴으로써 ‘구조인류학’을 정립했다. 음운론이 랑그에서 각 소리의 변별적 의미를 탐구하듯 인류학도 사회·문화적 체계에서 개별 인간의 행동 양식을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이전 인류학은 경험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사회의 구조를 관찰 가능하다고 이해했으며 사회 표면에 위치한 대상의 관찰을 통해 사회 구조와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개별 현상으로부터의 귀납적 추론이다. 하지만 경험주의를 배격하는 구조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구조는 관찰할 수 없으며 의식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내재된 사회 구조를 상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논리적 질서를 찾는 연역적 방법을 추구했다. 언어학에서 비롯된 구조적 사유가 인류학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후 구조주의는 자크 라캉(J. Lacan), 미쉘 푸코(M. Foucault) 등의 학자들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 이들은 합리적 개별 주체의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내재된 구조인 무의식으로부터 개별 주체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서양 철학의 기본 연구대상이던 합리적 이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구조로 대체한 것이다. 나아가 문학비평, 사회학, 미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리고 구조주의자들은 그들의 사상적 기원을 소쉬르에게서 찾았다. 단적으로 레비스트로스가 196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취임 연설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도스는 이를 두고 “언어학에서 출발한 구조주의가 20세기 중반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구조주의가 남긴 것

하지만 구조주의는 8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구조주의의 대표주자라 불리던 라캉, 푸코, 롤랑 바르트(R. Barthes), 루이 알튀세(L. Althusser)가 이 시기에 동시에 비극적으로 사라졌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자신이 독단적 ‘이성’을 끌어내리고 그것을 ‘구조’로 대체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다시 구조를 독단적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서 개별 주체가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 오로지 구조라는 관점에서만 설명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소쉬르로부터 시작된 구조주의는 이 세계를 독립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닌 상대적 체계들의 계열관계로 보는 인식론적 관점의 전환을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때문에 ‘구조주의가 가져온 인식론의 혁명’을 ‘지동설이 가져온 과학혁명’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더불어 구조주의는 인간주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조건 속에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지성의 빛 소쉬르가 죽은 지 정확히 한 세기가 지났다.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과)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이미 언어학에서 구조언어학은 물론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도 구식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현재는 언어학의 탈중심적인 위기 시대다”라고 전했다. 게다가 구조주의는 주류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오늘날에 소쉬르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소쉬르의 현대적 읽기

하지만 소쉬르의 사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 읽히고 있다. 현 시점에서 소쉬르의 사상이 재해석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상이 일종의 ‘성경’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도 교수는 “소쉬르의 사상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하며 원론적인 방향을 제시할 뿐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강하다”며 “일종의 이론에 대한 이론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소쉬르의 사상으로부터 새로운 관점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오늘날 주목받는 ‘인지언어학’에서도 소쉬르의 이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인지과학의 발달로 등장한 인지언어학은 인지능력 즉,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는 능력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집단의식으로 형성되는 언어체계를 통해 인지능력이 구현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소쉬르의 ‘사회적 규범인 랑그를 통해 구체적 발화 파롤이 구현 된다’는 생각이 ‘사회적 집단의식인 랑그를 통해 인지능력이 발현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된 것이다. 더불어 자의적 기호인 언어의 의미를 인간이 파악하는 과정에 인지능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는 소쉬르의 이론을 인지언어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다.

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언어학’에 소쉬르 이론의 개념을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사회언어학은 보편적 언어능력을 탐구하는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언어학 분야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언어의 다양한 변이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사회 속에서 언어의 다양한 변이는 소쉬르의 파롤과 같은 개념이다. 게다가 언어의 변이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랑그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언어학의 기원을 소쉬르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김현권 교수는 “사회언어학의 관심 연구 대상인 언어 간 접촉, 언어 차용, 문화적 근거로서의 언어 등을 소쉬르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지성

지난 2007년에 고려대에서 열린 소쉬르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언어학 외의 분야에서 소쉬르의 사상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재확인됐다. 소쉬르의 기호학적 관점에서 사진, 광고, 뮤직비디오, 게임콘텐츠를 분석하기 위한 시도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는 7월에 열릴 제19차 세계언어학자대회를 통해 언어학계에서 현재 소쉬르의 어떤 면이 부각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최고 권위의 언어학 학술행사로서 이번 행사는 소쉬르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 그가 생전에 재직했던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개최된다. 특히 이번 행사 첫번째 세션에서 미국의 언어학자 뉴메이어(Newmeyer)는 ‘소쉬르와 그의 유산’이라는 대주제로 현대 언어학과 소쉬르의 접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김성도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소쉬르의 사상에 대한 다양한 현대적 해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쉬르의 사상은 그 학문사적 업적 외에도 자기반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소쉬르는 스스로의 학문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회의했다. 김현권 교수는 “소쉬르는 당대 주류인 비교언어학의 최고 권위자였음에도 비교언어학에 어떤 결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고려했다”고 전했다. 소쉬르는 이런 회의감으로부터 자신의 학문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런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소쉬르는 기존 사고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죽고 한 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생각해보면, IB 프로그램으로 고등학교때 무슨 숙제였던거 같은데,
언어에 대학 철학을 썻던것 같다.
예를 들자면 가령, 한국에는 감이 있지만, 미국에는 감이 없다면,
미국에서는 감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라는 문제였다.
당시에도 나는 답을 풀지 못하고 대충 끄적거렸던거 같은데,
그래도 남들보다 5점인가 더 나와서 행복해했었던,
내가 그때 이책을 알았다면 대박이었을텐데 참 나는 성장했구나. 다행이다.

2013년 7월 29일 월요일

판단력 비판

IMMANUEL KANT (1724–1804)

Critique of Judgment

Summary

The Critique of Judgment, often called the Third Critique, does not have as clear a focus as the first two critiques. In broad outline, Kant sets about examining our faculty of judgment, which leads him down a number of divergent paths. While the Critique of Judgment deals with matters related to science and teleology, it is most remembered for what Kant has to say about aesthetics.
Kant calls aesthetic judgments “judgments of taste” and remarks that, though they are based in an individual’s subjective feelings, they also claim universal validity. Our feelings about beauty differ from our feelings about pleasure and moral goodness in that they are disinterested. We seek to possess pleasurable objects, and we seek to promote moral goodness, but we simply appreciate beauty without feeling driven to find some use for it. Judgments of taste are universal because they are disinterested: our individual wants and needs do not come into play when appreciating beauty, so our aesthetic response applies universally. Aesthetic pleasure comes from the free play between the imagination and understanding when perceiving an object.
Kant distinguishes the beautiful from the sublime. While the appeal of beautiful objects is immediately apparent, the sublime holds an air of mystery and ineffability. While a Greek statue or a pretty flower is beautiful, the movement of storm clouds or a massive building is sublime: they are, in a sense, too great to get our heads around. Kant argues that our sense of the sublime is connected with our faculty of reason, which has ideas of absolute totality and absolute freedom. While storm clouds or a massive building might stretch our minds, they are nothing compared with reason’s ideas of absolute totality and freedom. Apprehending sublime objects puts us in touch with these ideas of reason, so that sublimity resides not in sublime objects but in reason itself.
In a second part of the book, Kant wrestles with the concept of teleology, the idea that something has an end, or purpose. Teleology falls somewhere between science and theology, and Kant argues that the concept is useful in scientific work even though we would be wrong to assume that teleological principles are actually at work in nature.

Analysis

While much of what Kant writes about aesthetics might strike us now as a bit dated, his work is historically very significant. Kant’s Third Critique is one of the early works in the field of aesthetics and one of the most important treatises on the subject ever written. Aesthetics differs from literary criticism and art criticism, which have existed for millennia, in that it attempts to explain not only why things are or are not beautiful but also the concept of beauty and how the perception of beauty arises in us. Kant takes on the considerable task of making room for the concepts of the beautiful and the sublime in the complex account of the mind he gives in his first two Critiques.Unfortunately for Kant, the success of this project can be understood only in the context of his complex and abstruse philosophical system, while its failures are immediately apparent.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politics, which became clear in the twentieth century, casts doubt on Kant’s assertion that our response to art is disinterested, and his claim that our sense of beauty is universal makes less sense in a world in which we are exposed to the diversity of artistic products of different cultures. Although his work continues to influence work in aesthetics, Kant falls victim to the same problem that touches everyone who tries to make general claims about art: the very concept of art has great historical fluidity so that we can never nail down for all time exactly what it is.
Kant’s account of beauty as based in subjective feeling as well as his struggles with teleology stem from his desire to refute all metaphysical proofs of God. Kant is by no means an atheist, and he makes forceful arguments for why we ought to believe in God. However, God is the ultimate thing-in-itself, and so, according to Kant’s epistemology, the nature and even the existence of God are fundamentally unknowable. In the Critique of Pure Reason,Kant provides refutations for all the main “proofs” of God’s existence, one of which is the Argument from Design. According to this argument, the patterns and formal perfection in nature suggest the presence of an intelligent designer. Kant argues that our judgment of beauty is a subjective feeling, even though it possesses universal validity, in part because arguing that beauty is objective would play into the hands of those who make the Argument from Design. If beauty were an objective property of certain objects in nature, the question would naturally arise of how these objects were bestowed with beauty. This question would provide a toehold for the Argument from Design, an outcome that Kant is determined to avoid.
디자인적 사고를 통한 경영해법
 
기사입력 2012-06-07 08:29:15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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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욱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기면서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어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디자인이다. 우리나라의 제품들 중 세계 1위의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그 제품들의 디자인 또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IDEO라는 디자인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1991년 빌 모그리지의 ‘ID Two’, 데이비드 켈리의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 마이크 누탈의 ‘매트릭스 프로덕트 디자인’이란 3개의 디자인 회사의 합병으로 설립되었다. 엔지니어링 분야에 강점이 있던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과 휴먼 디자인 분야에 장점을 지닌 ‘ID Two’, ‘매트릭스 프로덕트 디자인’이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본사와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사무소 등에서 직원 500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P&G와 같은 글로벌기업과 삼성, LG, SK텔레콤 등과 같은 국내 유수의 기업이 IDEO에 디자인과 혁신 컨설팅을 의뢰하고 있다. 특히 애플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IDEO의 컨설팅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

인상적인 사실은 디자인 기업인 IDEO의 최근 몇 년 동안의 작업들을 보면 단순한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컨설팅 및 자문의 영역으로 자신들의 업역을 확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회사로써 쌓아온 고객에 대한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기업의 이미지 제고 및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IDEO의 혁신의 출발점은 다음에 있다.

우선 철저한 융복합적인 인력 구성 및 활용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통섭과 융합이 강조되기 훨씬 이전부터 IDEO에서는 철학, 심리학, 법학과 같은 인문학 출신의 인재들을 뽑고 이들이 디자인 전공자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다양한 전공의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너무나 자유롭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는 환경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었다.

IDEO는 디자인 회사이다. 하지만 회사소개에 가보면 그 어디에도 제품을 디자인 한다는 표현은 없다. 대신 IDEO에서 추구하는 바는 이노베이션 컨설팅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방법과 전략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노베이션은 사람들의 호감 혹인 창의, 사업화 가능성, 기술적인 가능성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혁신 컨설팅을 추진하긴 위한 이들의 방법은 첫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상용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작품을 만드는 작업인데 이에 대한 시간과 투자를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화 작업에 많은 토의를 거치고 아이디어의 구체화에 시간을 쏟고 있으며 이때 인문학 전공의 전문가들과 팀을 만들어 피드백과 협의를 진행한다. 두번째는 데이터 시각화 작업이다. 요즘 경영컨설팅에서의 화두 중의 하나는 집약된 데이터들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된다면 데이터에 대한 분석작업은 너무나 쉽게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전략과 진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어떠한 데이터 이든지 효율적인 시각화가 되어야만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이노베이션 전략 및 조직 디자인이다. 이제 세계적인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회사마다 이노베이션 전략을 수립해야만 하고 수립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 디자인 회사는 이노베이션을 구체화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클라이언트들의 내재된 혁신을 이끌어 내준다. 클라이언트들이 꺼내놓지 못하고 있는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준다. 네번째는 IDEO에서 주장하는 영감화(inspiration), 관념화(ideation), 적용화(implementation)라는 디자인적인 생각을 실현하는 3가지의 프로세스이다. 다섯번째로 이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브레인스토밍 방법이다. 이 방법은 1) 판단을 늦춰라: 그 어떤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마라. 2) 남의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라: ‘그러나’라고 하지 말고 ‘그리고’라고 말하라. 3) 거친 아이디어라도 장려하라: 기존의 틀을 벗어난 아이디어에 해답의 열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4) 많을수록 좋다: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하라. 5) 쓰고 그려라: 벽에 쓰거나 그려가면서 회의하라. 6) 주제에 집중하라: 토론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라. 7) 한번에 한가지만 이야기하라: 중간에 끼어들거나 남의 말을 무시하지 마라. 이러한 원칙과 기준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의 랩탑인 컴파스, 오랄B 칫솔등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디자인 했으며 이제는 제품을 디자인 하는 것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사의 혁신적인 전략을 창출 하기 위한 경영 컨설팅을 하고 있다.

최근 전세계의 모든 글로벌 기업에서 점점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강조하고 있다. IDEO의 사례에서 보여 주듯이 이제는 조직의 경영과 인생의 경영 모두 디자인적인 사고를 가지고 혁신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제는 개개인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잠재적인 필요, 행동, 욕망을 표출하여 조직이나 사람들을 돕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최종 소비자의 요구사항과 기술요인, 비즈니스적인 면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클라이언트가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는 데 총력을 다 해야만 하며 이를 위해 디자인적인 사고를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여성 리더_보연 이 알렌

[글로벌 리더에게 듣는다] 이부연 알렌 주한미국대사관 지역총괄담당관

"사람 섬기고 경청할 줄 알아야 진짜 외교관"
노정현 기자 icon다른기사보기
2012-03-07 [09:57:00] | 수정시간: 2012-03-07 [14:19:52] | 22면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이언스플라자] 데카르트와 자장면
2013-02-26 17:28:45 

17세기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데카르트가 중국음식점에 가면 자장면을 시킬까 아니면 짬뽕을 시킬까?

산업화 시대에는 점심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싼 메뉴가 자장면이었다. 점심시간에 중국음식점으로 달려가서 주문을 하면 항상 제일 연장자 혹은 직책이 높은 사람이 먼저 음식을 정하고, 자장면이 먼저 선택되면 `통일`해서 주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집중과 선택 그리고 효율이 가장 강조되던 시절에 자연스러운 풍속이었다.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식의 결정과 추진은 정부의 산업구조 개편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중화학공업 육성 등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개혁이 대표적이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을 해야 부국강병하고 기아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 벅차하며 너도나도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바로 그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것은 정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제는 자장면으로 통일하는 것보다 다양한 요리가 성장동력으로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강해지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과학기술 인재가 중소기업의 희망을 실력으로 상품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과학기술 인력 양성 수준이나 양은 글로벌 경쟁에서 중소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주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과학기술도 자장면 통일식 방법으로 지금껏 달려 온 면이 많다. 세계적 연구자의 척도는 주로 논문 수로 평가되어 왔고, 연구는 1년 혹은 6개월 만에 그 결과를 검증받아야 하는 짧은 호흡이 대부분이다. 최근 긴 호흡의 연구 지원이 간혹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단계별 평가에 길고 먼 깊은 생각의 걸음을 내딛기 어렵다. 교육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도 이러한 학풍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학부 교육도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교육보다는 학점 위주 성적표, 숫자가 모든 것을 대표한다.

석ㆍ박사 교육도 좀 더 깊게 오래 그리고 다양하게 생각하고 멀리 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는 연구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수들에게 소작을 부치는 고용 형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다양하고 깊은 생각 없이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없고 인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나올 수 없다. 깊고 묵히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으면 그저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가 양산될 뿐 자장면 신드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생각을 숙성시킬수록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교수와 연구원들은 교육과 연구를 평가하는 어쩔 수 없는 주체인 공무원 그리고 여론을 대표하는 언론의 등쌀에 완전히 숙성되지 않은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조미료가 득세를 한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도 언론도 좀 점잖아야 하고 긴 호흡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연구와 교육 조성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교수들도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일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유 전공제 혹은 유사한 전공제도는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 전체에 파급할 필요가 있다. 생각의 원천성ㆍ창의성이 교수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데카르트가 자장면이나 짬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사고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보다 다양하고 원초적인 사고에서 성장동력은 시작된다.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하는, 그래서 경쟁조차 관심 없는 중소기업들이 대한민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이끌 것이다.

[김양한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허연의 명저 산책]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진리탐구의 방법론
제시한 근대철학의 빛나는 기념비
기사입력 2011.03.11 17: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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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 어린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르네 데카르트는 멍하니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 1619년 어느 날도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데카르트는 바둑판 무늬 천장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좌표평면을 고안해낸다.

데카르트는 인류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모든 세상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식의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좌표평면을 고안함으로써 중세를 탈출한 첫 번째 지식인이 된다. 자연이나 사물이 균질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획기적 사유를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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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합리론이 거둔 성과물이 `방법서설`이다. 1637년 출간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이성을 바르게 이끌고 여러 학문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다. 이 저작은 데카르트 자신이 진리탐구를 위해 기울인 과정과 방법, 그리고 결실을 소개하는 책이다. 프랑스어로 쓰인 최초의 본격 철학서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자신만의 합리적 방법론으로 베이컨의 경험론을 보기 좋게 비웃었다. 경험론의 바탕이 됐던 귀납법은 좋은 철학적 방식이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A도 흰 백조를 봤고, B도 흰 백조를 보고, C도 흰 백조를 봤기 때문에 결국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식의 결론은 오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귀납법을 우연적이고 확률적이며 상대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연역법을 제시한다. 연역법은 진리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방법적 회의를 갖는 것이다.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진리를 의심하고, 개별적 사례를 찾아 헤매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 (맥킨지적 사고)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정리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네 가지 규칙을 보자.

첫째, 명증(明證)성의 규칙이다. 명증적으로 참으로 판명된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참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이다. 속단과 편견을 벗어 던지라는 이 명증성의 규칙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연구자의 자세로 지켜지고 있다.

둘째, 분해의 규칙은 검토해야 할 규칙을 될 수 있는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눠 분석하라는 것이다. 셋째, 종합의 규칙은 계단을 오르듯 단순하고 쉬운 것에서 시작해 차곡차곡 사례를 종합하여 진리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넷째, 열거의 법칙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완벽한 열거와 검사를 하라는 의미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토대로 한 사유 행위 속에 자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불후의 명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중세식 방법론에 회의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명백했다. 중세의 관습적 지식은 권위자들끼리도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의심할 수밖에 없고 중세의 경험적 지식은 착각이나 환상일 수 있으며, 중세의 수학적 지식은 계산상의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 소도시 라에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기숙학교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엄격한 기숙학교를 견뎌내기에 그는 너무 허약했고, 중세의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 똑똑했다.

프랑스를 떠나 학문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네덜란드로 건너간 데카르트는 그곳에서 학문의 꽃을 피운다. `방법서설`도 그곳에서 탄생한 책이다. 스웨덴 궁정에 초청되어 크리스티나 여왕의 철학교사 노릇을 하던 그는 1650년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사인은 폐렴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종교계가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

선구자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다. 그는 어떤 진리도 감히 의심할 수 없었던 중세 암흑기에 인류 최초로 미지수 `X`를 사용한 천재였다.

[허연 기자 @ heoyeonism(트위터 계정)]

[신경영리포트] 데카르트 마케팅 '열풍' 기사입력 2007-01-16 10:22 최종수정 2007-01-16 10:22


IT 기기나 가전제품에서 기능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디자인을 어떻게 만드느냐 인데요.
요즘 기업들은 첨단 기술의 개발뿐만 아니라 제품의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정석 기자의 보도입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디자인을 적용한 2007년형 에어컨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검은색 바탕에 꽃과 나비 문양이 새겨진 이 제품은 최대 5개의 방을 개별 냉방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김치냉장고와 드럼세탁기 등 앙드레김 디자인을 반영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LG전자는 지난달 최신형 휴대전화 '샤인'에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디자인한 한글 문양으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새겨 넣었습니다.

LG는 또 한국과 이탈리아, 미국의 LG 디자인연구소가 공동으로 만든 '아트 디오스' 냉장고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술성을 더한 가전제품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데카르트 마케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기술을 의미하는 'Tech'와 예술을 뜻하는 'Art'를 합친 신조어로 디자인과 기능 모두에서 소비자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가전업계에서 시작된 데카르트 마케팅은 이제 욕조나 주방용품 등 소비재를 비롯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품 하나에서도 개성을 나타내려는 소비자들이 들면서 아트디자인, 데카르트마케팅은 히트상품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mbn뉴스 이정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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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독일) 자유경쟁

"자유경쟁은 도덕성 촉진시켜"…독일 시장개혁의 토대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 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 hankyung.com

18세기 대부분의 나라에선 자유가 유린당했다. 정부의 압제 아래 온갖 차별과 특혜가 난무했다. 왜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존엄한지 깨닫지 못했다. 폭정 노예 빈곤만이 지배했을 뿐이다.

인류가 이런 미성숙하고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계몽의 길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존엄을 신봉하고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라고 주장한 인물이 독일 도덕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다.

아버지가 말안장 수리공인 가정에서 자란 칸트의 도덕철학적 출발점은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선험적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합리주의 인식론이다. 그는 인식론을 도덕철학에도 적용,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 이미 우리 정신 속에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기준이 정언명령(定言命令)인데,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이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거부된 행동은 해서는 안 될 의무가 생겨난다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 증진을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보편화돼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믿을 만한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의 이익도 챙길 수 없다. 거짓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수단으로 삼아 그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로써 예외 없이 모두가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규칙이 형성된다는 게 칸트의 혁명적 인식이다. 정언명령 테스트는 행동이 가져올 예측된 결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테스트는 누구든 해서는 안 될 바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행동규칙을 형성하는데, 이 행동규칙은 보편성, 행동목적을 내포하지 않는 탈목적성, 강제 계약불이행 등 특정행동을 금지하는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는 게 칸트 추종자들의 해석이다.

이런 정언명령이 지배하는 이상사회가 시장경제라는 칸트의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분업과 교환은 상호 간 인격 존중을 의미하는 정언명령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교환을 통해서 기업들은 고객의 목적에 봉사하고, 후자는 전자의 목적에 봉사한다. 이게 시장을 다목적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유경쟁이 도덕을 파괴한다는 주장으로 시장경제를 폄훼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칸트는 목소리를 높인다. 경쟁은 성실성 엄격성 정직성 등 도덕성을 촉진한다는 게 그의 탁견이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체면과 양심의 가책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의무감에서 도덕적 행위를 하게 마련이라는 그의 설명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없으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국가주의 주장에 대해 칸트는 ‘자연의 감춰진 계획’, 즉 자생적 질서라는 말로 맞받아친다. 인간들이 제각기 목적을 추구한다고 해도 혼란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가 생기고 유지된다는 게 칸트의 통찰이다. 자유가 허용될 경우 시민 공동체는 자동기계처럼 스스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도 오류가 있듯이 도덕 선택에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든 자유가 많을수록 오류가 적고 덜 파괴적이고 쉽게 수정 가능하다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칸트는 보호무역은 전쟁을 야기할 뿐이라고 개탄하면서 영구평화는 자유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전쟁을 극복하고 모든 나라의 보편적 이득을 증진해 세계평화를 창출하는 게 자유무역이라는 그의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칸트의 법치주의다. 도덕철학적 개념인 정언명령을 법학적으로 해석한 게 법치주의다. 이는 법이 법다우려면 특정 그룹에 대한 특혜나 차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내포해서는 안 되고 특정한 행동을 당연히 금지하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을 충족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자유의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만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 법치국가라는 게 칸트의 설명이다.

입법자가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 신체 재산을 유린하던 시기에 칸트는 법치국가라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싸웠다. 칸트가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특정 그룹을 차별하거나 국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입법이다. 인간을 국가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자유와 존엄을 파괴하는 입법을 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격분한다.

칸트는 국가가 특정한 산업이나 그룹을 온정적으로 보호하는 정책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온정주의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합리적 존재로서 개인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시민의 행복을 명분으로 복지를 공급하는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개인들의 깨우침과 도덕의 계발을 위해서도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주장이다. 정부가 자유를 침해하면 그 어떤 그룹이라도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유와 존엄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칸트의 위대한 사상은 최소국가이론이다. 이런 국가에서만이 과학 문화 도덕 경제도 번영한다는 게 칸트 사상의 결론이다.


칸트사상의 힘 - 오스트리아학파 시장이론에 영향

이마누엘 칸트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은둔의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새로 밝혀졌다. 칸트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친구들과 만났는데 대부분 사업가, 상인, 은행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증언이다. 대화 주제는 주로 경제·정치 분야였는데 이를 통해 칸트의 경제 마인드가 형성됐고,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도 알게 됐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그는 친구들의 회사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고,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칸트는 애덤 스미스, 흄 등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자들의 문헌을 두루 섭렵해 기업과 시장에 박식했다. 실제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독일은 칸트의 자유주의 사상을 열렬히 환영하고 이 사상에 따라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빈곤하고 뒤처졌던 독일은 자유주의 개혁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8세기 말, 이런 기대를 좌절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자유와 평등을 명분으로 한 프랑스 혁명군의 독일 침공과 혁명군의 만행이었다. 자유주의를 혁명군과 동일시한 독일인들은 한동안 개혁에 저항했다.

다행히 19세기 초부터 정부 주도의 개혁이 시작됐다. 자유무역, 토지소유의 자유 등 칸트가 강조했던 친시장 개혁이었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번창했다. 통계가 입증하듯이 정체돼 있던 인구가 19세기 중반 이후 급증했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경제 성장 덕이었다.

칸트는 일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대학에서 50마일 이상 나간 일이 없지만 그가 미친 사상적 영향만큼은 범세계적이다. 그의 인식론이 주관주의적 행동이론과 시장이론을 개발한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이에크도 세상에 대한 인지는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인지틀에 좌우된다는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인지틀은 고정된 게 아니라 진화 과정을 통해서 변동된다고 하이에크는 주장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주어져 있는데 정신이 액면 그대로 그것을 수용한다는 고전적 경험주의를 전제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오류를 밝혀낸 칸트 인식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통계나 관찰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은 믿지도 말라는 실증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것도 칸트 전통이라는 것이다.

도덕을 경제의 종속변수로 보는 미시경제학은 비용-효용이라는 의미의 경제적 합리성 테스트를 거처 도덕적 행위를 판단하는데, 이런 경제학을 반대하고 도덕을 경제에서 독립시켜 경제와 도덕을 이원화하는 경제학의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칸트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헌법가치로서 법치국가, 존엄성 개념을 중시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칸트 사상의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입력: 2013-06-14 17:07 / 수정: 2013-06-15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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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집단 지성 _ 시민주도

등록 : 2011.10.31 17:26수정 : 2011.10.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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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싱크탱크의 새로운 도전

2011년 3월11일. 거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규모의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곧바로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감히 근접조차 할 수 없어 방송카메라에 잡힌 모습으로 겨우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그 뒤 이어진 죽음과 공포, 피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는 설명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재건’과 ‘부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인지, 갑론을박은 계속되지만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2009년 9월.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일본 국민의 변화 열망이 만들어낸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자민당 1당 지배의 ‘55년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거품 붕괴와 장기 침체의 ‘잃어버린 20년’, 고이즈미 총리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개혁’, 더욱 심각해진 ‘격차사회’, 아베-후쿠다-아소로 이어지는 ‘세습총리’들의 무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불신 커져
그러나 새로운 미래의 도래에 대한 환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일본 열도를 덮쳤다. 이미 1000조엔 가까운 국가부채와 오랜 불황으로 힘겨워하던 일본이었지만, 천문학적 수준의 재건비용을 더 쏟아부어야만 하게 되었다.
앤드루 드윗 일본 릿쿄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지진과 쓰나미로만 벌써 2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약 20조엔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자연재해라는 것이다.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전처럼 ‘관료의 몫’만이 아님을 일본 국민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일본 민주당은 집권 전부터 ‘관료 주도’가 아닌 ‘정치 주도’의 정책결정 구조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은 서투르고 조급했다. 예산심의 공개, 불요불급한 토건사업 중단, 국가전략국 중심의 전략적 자원배분, ‘낙하산 금지’ 등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을 보며 일본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더욱 커졌다.
스즈키 다카히로 조사이국제대학 겸임교수는 “간 나오토 총리가 세세한 일까지 지시를 내렸다. 총리의 분노를 살까봐 관료들은 눈치를 보며 일했다. 하지만 총리나 민주당이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라고 사고 직후 상황을 전했다.

정당계 싱크탱크 실험 성과 못내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선 의지와 능력, 사람과 조직이 모두 필요하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재정정책 담당 대신 등을 맡아 총리 주도의 ‘관저(官邸) 정치’를 이끌었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학 교수는 ‘정당계 싱크탱크’의 역할을 강조했다. “관료 주도의 정책프로세스를 변화시키고, 이를 담당할 ‘정책 신인류’를 제공하는 것이 정당계 싱크탱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민당 계열의 싱크탱크 2005·일본이 2006년 3월에, ‘플라톤’이라는 별칭의 민주당 계열 공공정책 플랫폼이 2005년 11월에 설립되어 정력적 활동을 선언했다. 사카타 겐이치 ‘플라톤’ 연구원은 “상근 연구원 10명, 비상근 연구원 15명 이상의 규모를 갖추려 했다. 관료가 주로 정책을 만들고, 학자는 그것에 더이상 손대지 않으려 하는 문화를 혁파하려 했다”고 창립 당시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싱크탱크 2005·일본은 올해 2월28일자로 해산했고, 플라톤 역시 민주당 집권 이후 주요 멤버들이 정부에 참여하면서 현재는 스태프도 없는 휴면상태다. 정당계 싱크탱크의 실험은 실패했다.
도쿄재단과 일본재단이 함께 있는 건물 모습.
‘독립계’ ‘기업계’ 등장 새바람
그러나 정책 생산의 새로운 주체를 만들고, 정책 결정 구조를 바꾸려는 일본 사회의 노력이 중단된 건 아니다. ‘정치 주도’를 넘어서 ‘시민 주도’의 정책 결정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정책풍(風)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독립계’ 싱크탱크들의 수와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1997년 5월, 사사카와 평화재단 등으로부터 출연받은 50억엔의 기금으로 시작된 도쿄재단의 정책활동은 주목의 대상이다. 정책생산 능력과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지만,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정책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적이다. ‘고이즈미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제공공정책연구센터, 보수계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기본문제연구소, 간사이 지역 지식인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등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설립됐다.
돈·조직·의지 있으나 사람이 문제
외교·국방, 에너지, 거시경제를 다루는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지속가능한 경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연구하는 리코경제사회연구소 등 새로운 ‘기업계’ 싱크탱크의 등장 역시 흥미롭다. 일본을 대표했던 노무라총합연구소, 미쓰비시총합연구소 등이 수익사업 위주로 조직을 재편한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정책 연구를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스즈키 미치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사무총장은 “연구소는 100% 캐논이 출연한 재단법인이지만, 캐논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정책 개발과 제안이 설립 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리코경제사회연구소의 우메다 도모히로 연구원은 “리코의 방대한 기업네트워크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라고, 향후 영향력 확대 방향을 전망했다. 캐논연구소는 거시경제, 외교와 안전보장, 자원, 에너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수준 높은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고, 프랑스사회과학고등연구원 등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도 활발하다. 반면 리코연구소는 홈페이지 개설도 미룬 채 내부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고, 리코 본사와의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도쿄재단의 연구 및 사무공간.
기업계와 일부 독립계 싱크탱크들이 일본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책 제안’이라는 분명한 목표에 기반해 힘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돈과 조직, 의지가 확인된다. 문제는 이제 ‘사람’이다. 기성 관료와 정치인을 넘어설 역량과 비전을 갖춘 인물이 절실하다. 일본 사회가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투자와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정책인재’를 키우는 일본의 정책학교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일본 총리로 선출되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자 국내 언론들은 1979년에 설립된 마쓰시타정경숙을 다시 주목했다. 노다 총리 외에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정조회장,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 등 48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전액 장학생으로 뽑히면, ‘국가지도자’를 목표로 정책능력과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오마에 겐이치가 교장으로 있는 일신숙(一新塾)도 눈에 띈다. ‘집단지성’을 강조하는 오마에답게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학원’을 표방한다. 마쓰시타정경숙과 달리 학비를 내고 일정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1994년 설립 이후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2011년 9월 현재 국회의원 6명, 지방의원 90명, 단체장 7명을 냈다. 최근에는 사회적기업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올 11월 개교 예정인 일본정책학교도 주목할 만하다. 내년 7월까지 주 1회, 총 35회의 강의가 진행되며, 1기 테마는 “포스트 3·11 사회로의 이행”이다. 80명의 본과 학생(학비 20만엔)과 100명의 온라인과 학생(학비 12만엔)을 모집한다. 일신숙 창업자이기도 한 곤노 사쿠이치가 설립을 주도하고 있고, 유력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들이 강의한다. 일본정책학교 이사이기도 한 스즈키 조사이국제대학 겸임교수는 “차세대 정책인재 육성을 통해 일본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관료개혁의 큰 포부를 품고 경제산업성을 퇴직한 젊은 엘리트 아사히나 이치로가 설립한 아오야마사중(靑山社中)의 리더학원 프로그램도 인재 육성을 향한 일본 사회의 도전을 보여 준다.
도쿄/글·사진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